SF계열의 아포칼립스 물을 좋아한다. SF라서 현실감 있고, 아포칼립스라서 명료하기 때문이다.
SF는 기본적으로 현실을 마탕으로 근미래든 좀 더 나중이든 우리의 미래를 그리는 경우가 많다. 완전히 다른 세계는 때로는 즐겁지만 때로는 공감하기 어렵다. 놀라운 글솜씨로 새로운 세계 (예컨데 중세) 에 공감하게 되더라도 그 울림은 가까운 미래의 사람들에게 느끼는 공감에 비할바가 못된다.
아포칼립스 물을 좋아하는 이유는 현실을 다루는 작품들보다 멸망을 다루는 작품들이 인물을 잘 드러내기 때문이다. 우리의 현실에서는 여러 문제들이 있고 그런 문제들을 무시하고 넘어가는 일이 불가능하다. 그러나 세계가 멸망하는 상황에선, 오히려 사회보다는 인물의 상황과 그로 인해 극적으로 들어나는 성격이 눈에 띄기 때문에 더 즐겁다.
헤일메리는 내가 좋아하는 작품의 특징들을 잘 가지고 있으면서도, 매력적인 인물과 설정, 합리적인 사건의 전개 등 다른 면도 좋았다.
과학적인 추론의 과정과 동시에 멸망계열 SF 특유의 우울한 전개나 결말이 없이,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과 희망에 대한 찬가인 면이 즐거웠다.
SF는 추리소설 같이 각조각이 허용범주 안에서 자연스럽게 들어 맞는 점이 중요한데, 그 면에서도 전작들보다 더 깔끔해진 것 같았다.
언제가 미래가 아름답지는 않지만, 낙관과 희망 없이 나아갈 수는 없는 것 같다.